목양칼럼
매 주일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도신경의 신앙고백문 중에서 우리는 특별히 ‘성도의 교제’를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원래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성도의 교제’에 해당하는 라틴어 표현은 ‘코뮤니오 상크토룸’(communio sanctorum)이라는 두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의 단어 ‘코뮤니오’는 ‘서로가 하나 되어 나누는 것’을 의미하고, 뒤의 단어 ‘상크토룸’은 ‘거룩한 것’ 혹은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두 단어는 ‘거룩한 자들의 하나 됨’으로 번역될 수도 있고, ‘거룩한 것들에 참여함’으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둘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자들이 거룩한 것을 통하여 서로 함께 하나됨을 누리는 것’이 바로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공동체는 애초부터 코뮤니오, 즉 코이노니아의 공동체였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었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행2:42). 여기서 ‘교제’에 해당되는 헬라어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코이노니아’(koinonia)이고, 이것에 해당하는 라틴어가 바로 ‘코뮤니오’(communio)입니다.
‘코뮤니오’(commnio)의 접두사 ‘com’은 보통 ‘함께 한다’는 뜻이 강한 말이고, 그래서 ‘동료’를 의미하는 ‘컴페니언’(companion)이나 ‘소통’을 의미하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접두어로 사용되고 있고, 특별히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community)란 말에도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제, ‘코뮤니오’(commnio)는 함께 하나가 되어서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의 필수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와 같이 ‘코이노니아’와 ‘코뮤니오’의 모습을 온전히 이루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신학적 근거가 바로 바울의 ‘몸의 비유’ 속에 온전히 나타나 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몸 안에는 이렇게 수많은 지체가 있지만, 그 지체들은 서로 분쟁하지 않고, 서로 돕고 의지하며, 유기체적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몸 안에서는 연약한 지체가 도리어 귀중함을 얻고, 지체의식으로 온전한 하나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체의식’이 코이노니아의 기초이며, 이 지체의식을 갖고 함께 울고 함께 웃을 때에 교회는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매주일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할 때마다 진실로 ‘코뮤니오 상크토룸’(communio sanctorum)을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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