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계주 경기를 보면 결승선에 들어오는 마지막 주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 영광은 앞선 주자들의 출발과 버팀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새벽이 막 열릴 때 우리는 이불 속에서 하루를 준비하지만, 그 동틀 무렵에도 누군가는 먼저 일어나 길을 열고 불을 밝힙니다. 첫차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고, 학교 문을 여는 사람도 있으며, 예배당 문을 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굴을 알지 못해도 그들의 수고 덕분에 우리의 하루는 움직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섬김 위에 우리 모두가 서 있습니다.
가정과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의 돌봄과 희생, 선생님의 가르침과 기다림, 한마디 “괜찮아!”라고 말해 주는 이웃의 마음이 우리를 자라게 하였습니다. 교회는 더 분명합니다. 예배 한 번이 드려지기까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기도하고 준비하며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해 온 많은 손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문 앞에서 반갑게 맞이하고, 누군가는 뒤에서 소리가 흐트러지지 않게 지키며, 누군가는 아이들을 품고, 누군가는 끝난 뒤 조용히 정리합니다. 이렇게 서로의 섬김이 모여 교회는 살아 움직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행사로 유지되기보다 섬김으로 세워집니다. 그래서 섬김은 ‘몇 사람의 특기’가 아니라 ‘공동체의 호흡’입니다.
오늘 3부예배 시간에는 아나톨레 예식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으로 섬기던 분들이 한 걸음 물러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아나톨레’라는 이름처럼 이것은 끝만이 아니라 새로운 빛이 시작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하며 축복하려 합니다. 동시에 우리 앞에는 한 가지 질문이 놓입니다. ‘그다음은 누가 섬길 것인가?’ 누군가의 물러남은 공동체의 빈틈이 아니라 하나님이 새로운 사람을 세우시는 자리입니다. 이번 예식을 통하여 우리 각자가 이렇게 고백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제게 맡기실 섬김의 자리를 보게 하시고 기쁨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섬김의 사람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우리를 섬기러 오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의 길을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섬기며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주님의 길을 따르는 기쁨입니다. 큰 자리만 섬김이 아닙니다. 작은 섬김 하나가 교회를 따뜻하게 합니다. 오늘 물러나는 섬김의 선배들을 축복하며 그 손길이 남긴 믿음의 흔적을 우리도 이어갑시다. 내가 받을 섬김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로 기억합시다. 그리고 전해준 바통을 기꺼이 받아 듭시다. 그렇게 섬김의 꿈을 함께 꾸는 구미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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